국민연합 성명발표, 학원민주화와 계엄령 해제 요구.
전국 27개 대학 총학생회장단 가두시위를 결의.
서울시내 30개 대학 7만 여명 밤늦게까지 도심서 시위(1980년 5월 15일 서울 시청앞).
평화로운 민족민주화성회에서 광주학생과 시민들은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도청 앞 분수대에서 모이자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기억한 전남대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향하다 광주에 진주한 7공수부대와 접전
학생들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 구호 외치며 항의 시위 [전남대 정문] 금남로로 이동 “금남로로 가자!"
유동 3거리 공수부대 등장 무자비한 진압작전 감행
18일 계엄군에게 영문도 모른 채 구타당했던 청각장애인, 김경철씨 사망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 다시투입 무리한 진압작전 (화려한 휴가)
계림파출소 근처 계엄군의 장갑차 시위군 시민을 향해 발포, 조대부고생 김영찬 부상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 투쟁에 나섬
카톨릭센터 앞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 간의 공방전 계속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 시위대 분위기 고조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이 과잉진압 행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자 시민들 거센 항의 광주MBC 건물 방화
가장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광주역 광장에서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항의하던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사망자 다수 발생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발견된 사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만 명이 항쟁에 적극 동참함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퍼짐 공수부대 사격 시작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 총기 회수작업 시작
도청과 광장 주변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지원동 주남마을 앞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승객 18 중 1명만 생존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전역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중학교 1학년 방광범 좌측머리에 총탄 관통되어 사망함.
송암동에서 퇴각하던 공수부대와 잠복해있던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오인사격 화풀이로 인근 무고한 주민들을 다수 살상함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 원 전달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 논의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 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윤상원,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시민군 공식 발표,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 귀가조치 시킴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라는 여성의 목소리
도청 주변 완전 포위 4시 10분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시내전화 통화 재개